끝없이 외부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나 자신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연습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 형제, 친구, 학교, 직장, 결혼… 삶의 대부분은 ‘나 아닌 누군가와의 연결’로 채워지죠.
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 있는 나 자신과의 관계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이 글은 잊고 지내던 ‘나와 나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며, 내 안의 고요한 우주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외부와 연결될수록 성공이라 여겼지만, 진짜 회복은 내면의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나를 잊고 살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관계는 부모입니다. 그다음은 또래 친구, 선생님, 사회, 직장, 가정…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며 ‘역할’로 살아가게 됩니다. 학생, 자녀, 배우자, 직원, 부모. 그 모든 호칭은 내 이름이 아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는 점점 ‘어떻게 보이느냐’에 집중하게 되고,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됩니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조차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활동하는가’에 따라 판단하게 되죠.
일상이 빠르게 굴러갈수록 나는 내 감정에 귀 기울이지 못했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곧 존재의 증명이라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성취가 쌓일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점 더 희미해졌습니다. 나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질문을 건네지 못한 채 살아왔던 거죠.
그때부터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계속 밀어붙이고, 비교하고, 다그치는 방식으로 살아왔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내 감정의 무게로 되돌아왔습니다.
고난 앞에서 처음 마주한 ‘나’
하지만 삶은 언젠가 우리를 관계 바깥으로 던져놓는 순간을 줍니다. 직장을 잃거나, 관계가 멀어지거나, 건강이 무너지거나… 그 모든 외적인 소속이 잠시 멈춰버릴 때,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혼자’가 됩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와 단둘이 남는 법을 배웁니다. 외로움보다 낯선 건 그동안 너무 멀리 밀어두었던 ‘내 감정’, ‘내 생각’, ‘내 고통’이에요. 왜 그렇게 살았는지, 무엇이 그렇게 아팠는지,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질문은 아프지만 따뜻합니다.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돌아와 나를 껴안으려는 시선이기 때문이죠.
고난은 축복이 아닐지 몰라도, 그 고난은 나를 내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그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성취도, 역할도, 평가도 모두 벗은 채 존재하는 나. 그 순수한 감정 앞에서 우리는 진짜 회복을 배웁니다.
삶이 가르쳐주는 가장 조용한 진실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관계가 멀어지는 순간, 끝까지 남는 존재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나와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서툴지만, 그만큼 진심입니다.
나와 나를 다시 연결하는 일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질문은 어떤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이기 때문이에요.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 그 말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건네는 연습. 그것이 바로 나와의 관계 회복입니다. 침묵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보는 시간, 아무 이유 없이 조용히 나를 안아주는 마음.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는 회복을 시작할 수 있어요.
나에게 말을 걸고, 나의 감정을 기록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해 보는 것.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돌보는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본질입니다.
나와 잘 지내는 사람은 세상과도 다정하게 연결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훨씬 더 부드럽고 깊어지기 때문이에요. 세상과 연결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자신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내 안의 우주를 사랑하는 연습
나와 나의 관계는 그 어떤 외부 관계보다 먼저, 그리고 끝까지 함께해야 할 존재입니다.
외부에서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내 안에 있는 ‘나’가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해요. “지금도 잘하고 있어.”
누군가의 인정 없이도 나는 충분히 존재로서 의미 있는 사람이며, 비로소 그렇게 나를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살아진다’가 아니라 ‘살아낸다’가 됩니다.
내 안의 우주는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우주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은 삶의 가장 깊고도 아름다운 출발점이 됩니다.
오늘, 나와 단둘이 마주 앉아보세요. 그곳에서 비로소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