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스며드는 작지만 깊은 자아의 회복
이 글은 전편 《자존감과 자신감》 시리즈에 이어, 조금 더 부드럽고 일상적인 시선으로 ‘나’를 회복하는 흐름을 이어갑니다.
많은 분들이 “취미 하나쯤은 있죠”라고 말하지만, 막상 “당신의 취미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삶에서 취미란 단순한 여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라는 존재가 가장 조용히 숨 쉬는 순간이며, 소모된 일상 속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취미를 ‘정체성의 일부’로 바라보며, 삶을 되찾는 다정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함께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른 채 어른이 됩니다
“시간 날 때 뭐 좀 해볼까?”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하지만, 정작 그 ‘뭐’가 무엇인지 몰라 TV를 켜거나, 휴대폰을 스크롤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적 무엇이든 흥미롭고 좋아 보이던 시절은 어느새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질문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한 방 안에 조용히 머물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취미는 그 방 안에서 조용히 머무는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성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솔직하게 ‘나’로 존재하는 순간은 누구의 기준도 없이 취미에 몰두하고 있을 때일지도 모릅니다.
취미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존재의 회복입니다
‘취미’라는 말은 일상 속 가장 가벼운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를 조용히 지탱하는 기둥이 되기도 합니다.
하루를 버티고 난 후, 지친 마음으로 다시 나만의 공간에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려주는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취미가 가진 힘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본성을 에너르게이아(energeia), 즉 ‘능동적인 활동성’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은 단순히 숨 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 의미 있는 활동이 반드시 ‘일’ 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일에서 벗어난 ‘비의무적인 몰입’이 더 순수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취미는 바로 그런 활동입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시간.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나를 회복하고, 세상과 나 사이에 부드러운 경계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나의 취미는 어떻게 ‘나’를 드러낼까요?
“요즘 다들 하는 거니까 나도 해볼까?” 많은 분들이 유행처럼 비슷한 취미를 시도하지만, 그 안에서 진짜 나를 만나는 경험은 의외로 드뭅니다.
진짜 취미는, 남이 보기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활동입니다. 내가 웃고, 내가 집중하고, 내가 느끼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를 세계-내-존재(Dasein)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인간은 세계 안에 던져져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취미는 그 세계 안에서 내가 ‘어떻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지만 분명한 흔적이 됩니다.
누군가는 색연필을 들고, 누군가는 작은 화분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자기만의 호흡을 담아냅니다.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방식’입니다.
나는 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고 있을까요?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그 말속에는 자신을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 온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자유는 갖고 있지만, 정작 나를 위한 선택에는 주저함이 많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결과가 없으면 그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는 사회 안에서, ‘그저 좋아서 하는 것’을 찾는 일은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은 의미 있는 낭비가 있어야 깊어집니다.
가장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가장 진하게 살아 있게 만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능동적 활동이다. 존재는 그 활동 안에서 드러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위한 활동’을 허락하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그 활동이 바로 취미입니다.
취미는 내 마음이 조용히 숨 쉬는 자리입니다
취미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능력이 아니라 내 마음이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활동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존재를 회복하는 작고 깊은 연습이 됩니다.
오늘 하루가 끝나고, 세상이 아닌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소모 속에서도 자기를 지켜내는 위대한 움직임일 것입니다.
이 글은 '나를 회복하는 사유' 시리즈 1편으로, 다음 편에서는 《나를 표현하고, 나를 드러내는 특기의 의미》를 통해 자아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해 함께 성찰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