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흘러야 하고, 관계는 지켜져야 하니까
감정이 태도로 번지는 순간, 관계는 상처받습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우리는 왜 더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더 깊이 후회하게 될까요.
이 글은 감정과 태도의 경계, 그리고 나를 이해하는 연습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입니다.
감정은 표현이 아니라, 흐름이다
누구나 감정을 느낍니다. 기쁘고 슬프고 억울하고 외롭고… 그 모든 감정은 인간다움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오래 머물러 있거나, 제때 흘러가지 않으면 그 감정은 어느새 태도가 되어 말의 톤이 되고, 표정이 되고, 관계의 틈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섞인 말투, 한숨, 퉁명스러운 대답, 차가운 눈빛… 이 모든 것이 사실은 “감정이 흐르지 못하고 쌓인 결과”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감정이 누구에게 향하느냐는 것이죠. 조심스러운 관계에겐 억누르며 웃고, 가장 편한 가족에게는 걸러지지 않은 감정이 흘러갑니다.
감정을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억누른 감정은 형태를 바꿔 더 강하게 터지곤 하니까요.
감정은 흘러야 합니다. 마치 강물처럼, 막지 않고 방향만 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정념(감정)은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감정이 태도로 굳어지지 않도록 막는 첫걸음입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은 타인을 향한다
기분이 안 좋은 날, 우리는 쉽게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냅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쉽게요.
왜일까요? 사실은 ‘그 사람이 밉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감정을 모르고 있으면 그 감정은 가장 쉬운 대상에게 흘러갑니다. 그 대상이 바로 가족, 배우자, 자녀일 때가 많습니다.
마음공부에서는 이것을 "감정 전가"라고 부릅니다.
자기 내면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할 때, 그 감정을 타인에게 넘기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난 후 문득 드는 후회. "왜 그랬을까. 나도 사실 많이 힘들었는데…"
이런 마음이 든다면, 그건 내 감정이 해소되지 못한 채 타인에게 흘러갔다는 증거입니다.
감정을 다루는 일은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잠깐만 바라볼 수 있다면, 감정은 나를 망치지 않고, 나를 이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내 기분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것보다 그 기분으로 인해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입니다.
감정을 다루는 태도는 곧 나를 대하는 방식이다
감정은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내 태도를 지배하게 되면 삶의 주도권이 감정에 넘어가게 됩니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말합니다. “감정은 행동을 낳지만, 성찰은 태도를 만든다.”
우리가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감정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그 감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기분이 나빠.” 이 말과 “그래서 짜증 낼 거야.” 이 행동 사이에는 단 하나의 여백, ‘인식’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여백은 곧 나를 지키는 공간이 됩니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품은 나를 지켜보는 일. 그게 바로 태도를 다루는 연습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아요. 내가 내 감정에 다정할 수 있는가. 내 기분이 나빠도, 그걸 굳이 ‘누군가에게 향하게 하지 않고’ 잠시 머금을 수 있는 힘. 그게 곧 성숙이고, 자기 사랑의 시작입니다.
감정이 많아도 괜찮아요. 흘러가는 줄만 알면, 그건 절대 삶을 해치지 않아요.
기분은 지나가고, 관계는 남습니다
기분이 나쁜 날도 있고, 내가 감정에 휘둘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감정을 억제하기보다, 그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 그것이 진짜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소중한 관계를 지켜내는 길입니다.
기분은 사라지지만, 그 기분으로 했던 말과 태도는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내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조용히 물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감정을 안아주며 관계에 사랑을 남기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기분이 흐르는 대로 행동했던 나를 돌아보며,
감정이 나를 흔들기 전에 스스로를 다정하게 붙들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된 기록입니다. -솜사탕써니 >